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개변된 역사 (문단 편집) == 이탈리아 == 국왕의 비호 아래 무솔리니가 [[이탈리아 왕국]]을 장악하고 있으며, 독일 내전에서 이득을 취하려 한다. 내전에서 밀리고 있던 나치 정권에게 오스트리아의 티롤을 할양받기로 약속받고 내전에 참전하였으나 티롤의 국경 방위대[* 심지어 오스트리아 국경방위대는 군대가 아니라 '''경찰'''이다. 이탈리아의 '''군대'''가 오스트리아의 '''경찰'''에게 패배한 것(...)]에게 패배하고 후퇴하는 등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이탈리아군의 전설]]을 찍어낸다. 이후 제 4제국은 독일 내전이 끝난 이후 전력을 폴란드에 집중하기 위해 이탈리아 전선에 발터 모델을 ~~전선을 리모델링 하기 위해~~ 배치한다. 그렇게 이탈리아군은 모델의 완벽한 공세적 방어 속에서 갈려나간다. 그래서 티롤을 먹기는커녕 다시 밀려나 버렸지만 그래도 정신을 차렸는지 단단한 방어선을 구축해서 독일의 공세를 막아내기도 한다. 그 뒤로는 일본,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2차 대전에 참전하며 프랑스의 영국 본토 침공 즉시 몰타와 알렉산드리아를 공격하기로 한다. 하지만 망명한 히믈러의 위치가 발각되고, 나치 잔당을 지원하며 시도했던 독일내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후 궁지에 몰리자 자국의 해군 활동을 빌미로 프랑스의 재 지원을 얻어낸다. 그러면서 독일의 공격 준비가 임박하여 공군력을 독일방면으로 돌리는 등 자국 방어준비에 급급하고 해군은 제공권을 빌미로 가만히 있으면서 영국 지중해 함대를 기습할 기회를 잃는다. 이후 프랑스의 영국 본토 상륙소식을 듣고는 급하게 선전포고를 하지만 이미 지중해 함대는 방어준비가 다 된 상태라 뒷북을 침 셈이다... 그리고 마침내 독일군은 무러 5천기에 이르는 공군기들과 포병들로 이탈리아군의 방어선을 밤낮으로 맹폭하고, 결국 이탈리아군의 알프스 방어선은 구데리안이 이끄는 독일군에 돌파당해, 독일군은 이탈리아 공략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다. 바다에서는 영국 지중해 함대 소속 항모들이 타란토 공습을 벌여 귀중한 전함 리토니오가 전열 이탈한다. 이후 몰타 공략을 위해 전함 5척을 중심으로 한 주력함대를 파견하고, 영국 지중해함대와 처절한 해전을 펼쳐 초반에는 기세에서 밀려도 점차 우세를 점하는 듯 했지만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온 영국 H기동전단의 공격에 전함 5척 전부를 잃고 결국 패배한다. 전함은 리토니오 1척만 남는 등 해군이 전멸한 상황에서 독일군의 공격으로 베네치아가 함락되고, 밀라노까지 밀리는 등 북부 핵심 도시들이 함락당하며 위기상황에 처한다. 이에 따라 국왕과 파시스트당은 자포자기한 무솔리니를 잘라내려 하고, 탄압을 받던 사민당등 시민세력과 반파시즘 세력들이 목소리가 높이며 전쟁에 회의적인 군부 세력과 협력하면서 독일과 협상을 시도중이다. 결국 밀라노까지 함락을 당하자, 국왕 명의로 쥐드티롤 양도와 10년간 10억 마르크 배상금 지급을 조건으로 협상을 시도하려 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식민지를 포기하지 않고 자기 권력 지키려는 국왕과의 협상 대신 반파시즘 국민해방위원회와 협의를 하여, 모든 식민지 및 쥐드티롤과 군함 상당 수를 양도하고 이탈리아 혁명기간 동안 임시적 휴전 그리고 무솔리니와 힘러, 파벨리치등 전범을 넘기는 대가로 배상금 액수를 조정하기로 합의한다. 그에 따라 독일전선에 있던 이탈리아군이 로마로 진군했고, 그 전에 반파시즘 국민해방위원회의가 봉기를 일으켜 로마를 장악한다. 이에 국왕은 왕가와 함께 로마를 탈출하여 나폴리로 이동했고, 힘러를 비롯한 이탈리아 파시스트 당원들도 도주를 한다. 무솔리니는 로마를 탈출하지 못하고 성난군중에게 잡혀 참혹하게 죽었고 힘러도 파견된 오토 슈코르체니에게 체포된다. 도주한 국왕은 국민해방위원회가 반파시즘만 낸 것을 뒤늦게 알고는 왕정 유지 대가로 파시스트 당원들을 넘기겠다고 협상을 시도하지만, 이미 국왕의 행태에 분개한 국민해방위원회는 남이탈리아로 진군해 파시스트 당원들과 왕가를 확보한 뒤 국왕을 무솔리니 대신 독일에게 전범으로 넘기기로 한다. 이후 내전이 일어나지만, 주인공이 제안한 여론전과 함께 독일이 국왕의 밀서들을 공개하면서 군주제 폐지 여론이 퍼지고 사실상 국민해방위원회가 무혈 승리한다. 왕가를 비롯해 왕당파와 파시스트당은 나폴리가 함락되자 해외로 나가고자 했지만, 타란토로 도주한 뒤 대기하던 지중해 함대의 배신으로 전원 체포된다. 국왕의 체포 이후에 왕정 폐지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왕정 폐지 찬성에 원 역사의 찬성율인 54퍼를 넘어가는 70퍼정도의 찬성율로 왕정이 폐지되며 왕정 폐지후에 추축국에서 탈퇴한다. 이후, 에티오피아와 알바니아의 독립 인정과 독일과 영국에 쥐트티롤 및 리비아등 모든 식민지 할양, 독일에게 20년간 30억 마르크의 배상금 분납하며 일부는 식량과 민간물자로 지불, 에티오피아와 알바니아에게도 각각 3억 마르크와 1억 마르크 배상, 영국에는 전함 리토리오와 보조함의 절반을 넘기는 조건으로 연합국과 종전협정을 맺는다. 전후 공화국으로 거듭난 이탈리아에서는 배상금을 식량으로 대신하면서 경제가 차근차근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이탈리아에서 유입된 식재료가 동유럽에 퍼지면서 긍정적인 효과가 일어났다. 이후에도 경제적 격차와 지역감정은 여전하지만 유럽연합 결성 후 이탈리아는 관광업을 통해 재미를 보면서 나름 살기 괜찮은 나라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